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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에고 에이미(ejgwv eijmi) 본문 주석(II) > 정철주 교수의 요한복음의 에고 에이미(EGO EIMI) 선언에 나타난 기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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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에고 에이미(ejgwv eijmi) 본문 주석(II) > 정철주 교수의 요한복음의 에고 에이미(EGO EIMI) 선언에 나타난 기독론




IV. 에고 에이미(ejgwv eijmi) 본문 주석(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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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굼 작성일18-03-23 14:18

본문

   3. 나는 양의 문이다(요 10:7,9).
  요한복음 9장에서 수사학적 배경인 출교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그 이후 10장에서 요한은 예수께서 “나는 양의 문이다” 선언하신 말씀을 기록함으로써 유대교의 축출과 박해 속에 두려움과 공포의 속박으로부터 믿음을 지켜 승리할 수 있도록 의도한다. 요한은 예수께서 ‘양의 문’ 논쟁을 통해 자신을 구원의 통로로 말하고 있으며,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생명을 풍성히 공급하시는 분으로 논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도입을 통해 참된 목자가 누구인가를 밝힌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모두 절도며 강도이고, 오직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이다(1-2). 문지기는 목자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양은 자신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 나선다. 목자가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 앞서가면 양들이 그 음성을 앎으로 따라 오지만, 타인은 모르기 때문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도망을 간다(3-5).


  요한은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요한공동체를 양으로 본다면, 문지기는 세례요한, 목자는 예수, 타인은 예수보다 먼저 온 자로 요한공동체를 위협하는 유대인들일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위급한 수사적 상황을 인지할 수 있게 한다.


  예수께서는 또한 자신이 구원의 문임을 강조하기 위해 더욱 강화시켜 표현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 오직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는 예수밖에 없다는 표현으로 요한공동체에 자신을 통해 온전한 자유와 안전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결론은 메타포가 더욱 확대되어 나타난다. 도적들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지만 예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신다(10). 이 메타포는 유대인들을 자극하고 요한공동체에게는 소망을 부여하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선한목자 선언(요 10:11-18) 이후 유대인들의 반응은 분쟁으로 소용돌이친다(19-20). 이러한 수사학적 구조 역시 도적과 목자의 대조를 통해 요한공동체가 직면한 유대교로부터의 축출과 위협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4. 나는 선한 목자다(요 10:11,14).
 예수의 에고 에이미 선언은 ‘선한 목자’에서 절정을 이룬다. 여기에서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그의 사역을 밝힌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개의 상징적 선언 가운데 ‘선한 목자’ 메타포가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선언들은 선한 목자의 생명을 주는 예수의 사역과 관계있고, 상호 관계들을 통하여 생명으로 들어가는 원리를 제공해 준다.


  ‘선한 목자’ 선언은 ‘양의 문’ 선언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양의 문’ 선언을 논쟁 I로 보고, ‘선한 목자’ 선언을 논쟁 II로 보아야 한다. ‘양의 문’ 선언과 동일한 수사학적 상황에 처해 있는 요한공동체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요한은 ‘양의 문’ 선언과 ‘선한 목자’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음을 소개한다. 혹자는 예수께서 귀신이 들렸다고 확신하며, 다른 이들은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20-21). 이와 같은 수사학적 구조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께서 유대교의 위협에 위축되어 있는 요한공동체에게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 생명을 주는 메시야임을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며, 이 사명을 수행한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서 영화롭게 된다.


  유대교의 위협에서 목숨을 걸고 공동체를 지켜줄 수 있는 자는 오직 예수뿐이다.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기 위해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이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원대한 계획이다. 따라서 요한공동체는 이제 유대교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믿음으로 예수께 귀의하여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하신 사랑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릴 것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는 요한공동체에게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드러내고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그 사역을 완성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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